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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박근혜 최태민 육체 정신 지배기타 2016. 10. 31. 14:12
위키리스크 박근혜 최태민 육체 정신 지배 뉴욕타임스 보도
뉴욕타임스 인터넷사이트 아시아지역판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나선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관이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이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불린다는 정보를 본국에 보고했다는 사실을 위키리크스가 밝힌 내용이 덩달아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7월20일자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수록된 문서에 따르면 윌리엄 스탠턴 당시 주한 미 부대사는 한국 대선을 앞둔 각당 후보들의 상황과 판세, 대선이슈 등을 본국에 보고했는데요.
특히 본 문서에는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에 대해 "박 후보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면서 "경쟁자들이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부르는 최 목사(pastor)와의 35년전 관계와 그가 육영수 여사 서거 후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로 있던 시절 박 후보를 어떻게 지배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어 스탠턴 전 부대사는 "최목사가 인격 형성기에 박 후보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고, 최목사의 자제들이 그 결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루머가 널리 퍼져있다"고 전했는데요.
커뮤니티 캡처 - 사진
전직 미국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인용해 '한국 대선 : 여전한 소용돌이 정치'라고 제목 붙인 이 문서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 대사가 기밀로 분류한 후 미 국무부 등에 전송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7일 박 대통령이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A Presidential Friendship Has Many South Koreans Crying Foul-대통령의 친분에 한국인들 맹비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번 최순실 스캔들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한국 국민들의 분노를 그대로 전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기사의 1/3 가까이를 할애해 최목사와 박 대통령의 만남부터 관계, 인물에 대한 분석 그리고 사이비 목사로서의 행적,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이용한 부패 등을 소개하며 군부독재자인 박정희의 피살 이유 중 하나가 '박정희가 최목사의 부패한 활동을 중단시키지 못했고 그를 박 대통령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나아가 위키리크스 최태민 박근혜 관련하여 '2007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전신에서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은 최목사가 "인격형성기의 시절에 박 대통령의 육체와 영혼을 온전히 지배했고 그 결과로 그의 자식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을 보고했다'며 심지어 '그런 소문 중 하나는 결혼한 적이 없는 박 대통령이 최목사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소문을 부인했다.)'는 것까지 밝혔는데요.
이어 딸인 최순실의 국정농단, 즉 연설문 수정, 6900만 달러 기부 압박, 심지어 박 대통령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전을 담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연설문 수정까지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최태민 목사가 과거 박근혜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완전한 통제를 하고 있었으며,그의
아이들은 그 결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 위키리크스 박근혜
뉴욕타임스는 '최순실이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불렀고 스스로 참모 팀을 꾸리고 있었으며, 이들이 장관 임명이나 지난 1월 북한의 핵무기 실험 후 남북 합작 프로젝트인 개성공단을 폐쇄시킨 것과 같은 정부의 주요 결정에 개입했다. 최순실이 사실상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한겨레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했는데요.
한편,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씨는 자유당 정권 시절 경찰업무를 하다 1954년 승려가 된 이후 불교에 몸을 담았는데요.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 사기 혐의로 쫓기는 신분이 되자 성당에서 영세를 받더니만, 1973년에는 본격적으로 사이비 종교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훗날 목사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가 신학대학을 다녔다거나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요.
목사로 알려져 있는 그가 실제 목사로 재직한 기간은 1912~1994년이지만 기독교계는 목사가 아니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1975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란 교단이 존재했는지 확실치 않고, 있었다 해도 사이비 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선데요.
기독교계는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최씨에게 목사 칭호를 붙이는 건 부적절하며 선량한 목회자들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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